근로시간 단축 제도 정책실험 방안 연구
과제분류 정책연구
발행연도2025
보고서 번호2025-20
저자김국동, 김을식, 조진현
한국은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긴 수준에 속한다. 특히 최근 심화되는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장시간 근로로 인한 돌봄 공백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이에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주 5일제나 주 52시간제 도입 때와 같이, 주 4일제 등 추가적인 근로시간 단축 방안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 간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첨예하다.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는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 산업재해 감소 등을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생산성 향상 없는 단축은 기업 경쟁력 약화, 고용 감소, 소득 격차 확대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산업별, 기업 규모별, 직종별 특성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과 수용성이 다르다.
이처럼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에 대한 상반된 견해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와 효과적인 정책 설계를 위해서는 정책이 실제 기업의 생산성, 고용, 성과 및 근로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재정 여건 변화는 정책의 효과성을 엄밀히 평가하고, 증거에 기반하여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킨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인과적 효과를 가장 신뢰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론인 무작위 통제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경기도에서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 보고서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은 서론이며, 2장에서는 정책실험 사례 및 제도를 검토하고, 3장에서는 주 52시간제 도입의 효과성 분석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의 예상 효과와 방법론적 한계점을 제시한다. 4장에서는 정책실험 방법론의 이론적 장점을 검토하고, 5장은 정책제언으로 구성하였다.
2장에서는 근로시간 단축 및 관련 정책실험에 대한 국내외 사례와 법・제도를 폭넓게 검토하였다. 국내에서는 서울시의 디딤돌소득 시범사업과 여행바우처 사업 등 무작위 배정을 활용한 정책 평가 시도를 살펴보았으며, 국외에서는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스페인, 영국 등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었거나 시도 중인 주 4일 근무제 실험의 구체적인 설계, 결과, 시사점을 분석하였다. 이들 사례는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 웰빙 증진과 생산성 유지 또는 향상에 기여할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급여 삭감 없는 모델(‘100-80-100’), 충분한 준비 기간, 업무 효율화 노력, 노사 합의, 객관적 성과 측정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또한 핀란드와 네덜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영국 행동통찰팀(BIT)과 미국 평가과학실(OES) 등이 주도한 기업 대상 지원사업 RCT, 개발도상국의 마이크로크레딧 및 경영 교육 효과 평가 RCT 사례 등을 통해 정책실험 설계의 다양성과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매사추세츠주와 벨기에 등의 근로시간 단축 관련 입법 시도는 정책실험의 법제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구체적인 요소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례 검토는 향후 경기도에서 정책실험을 추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귀중한 교훈과 제도적 틀을 제공한다.
다음으로, 3장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시행된 대규모 근로시간 규제 정책인 주 52시간 상한제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기업 규모별 단계적 도입이라는 정책적 특성을 활용하여, KoDATA의 2012-2021년 기업 패널 데이터를 이용한 이중차분법(Difference-in-Differences) 및 도구 변수(Instrumental Variable) 접근법을 통해 정책의 인과 효과를 추정하고자 하였다. 분석 결과, 주 52시간제 도입은 연구 대상인 제조업 기업들의 평균적인 종사자 수나 매출액 수준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 대체효과와 생산 규모 변화에 따른 효과가 서로 상쇄되었거나, 기업들이 생산성 유지를 위해 내부 효율성을 제고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반면, 기업의 임금 총액은 정책 도입 이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약 8.5%) 감소하였는데, 이는 주로 연장근로 감소에 따른 초과근로수당 축소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벤트 스터디 분석 결과 역시 이러한 경향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이 분석은 특정 산업(제조업)에 국한되고, 관측되지 않은 요인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준 실험적 방법론의 한계를 지니고 있어, 결과를 일반화하거나 정책 효과를 단정하기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따라서 보다 명확한 인과관계 규명을 위해서는 RCT를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에, 4장에서 정책 효과성 평가 방법론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정책평가의 핵심 목표인 인과관계 추정과 내적 타당성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잠재적 결과 프레임워크(potential outcomes framework)를 소개하였다. 현실의 관찰 데이터 분석에서 널리 사용되는 매칭(Matching), 도구 변수(IV), 이중차분법(DID), 회귀불연속(RDD), 합성통제법(SCM) 등 주요 준실험적 방법론들의 원리, 장점, 그리고 각각의 방법론이 의존하는 핵심 가정과 그 한계점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러한 준실험적 기법들은 현실적 제약 하에서 최선의 추정을 시도하지만, 선택 편의나 누락 변수 등 내생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어렵고 그 가정 충족 여부를 완벽히 검증할 수 없어, 추정 결과의 신뢰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반면, 무작위 배정 실험(RCT)은 연구 대상을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에 무작위로 배정함으로써 관측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모든 교란 요인의 영향을 평균적으로 동일하게 만들어, 정책 개입의 순수한 인과 효과를 편향 없이 식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신뢰도 높은 방법론임을 강조하였다. 물론 RCT 역시 외적 타당성, 윤리적 문제, 실행상의 어려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지만, 내적 타당성 확보 측면에서는 다른 방법론보다 월등한 장점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경기도가 기업 지원 정책, 특히 근로시간 단축 관련 시범사업 등의 효과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RCT를 도입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언하였다. 먼저 현행 법・제도 환경을 분석한 결과, RCT의 핵심인 ‘무작위 배정’ 방식이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지방재정법」, 「경기도 지방보조금 관리 조례」 등에서 요구하는 공정성, 평등 원칙, 기준 기반 선정 원칙과 상충될 소지가 크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이는 RCT 도입의 가장 큰 법적・제도적 장애물이다. 다만, 「경기도 시범사업 운영 및 평가에 관한 조례」가 ‘효과성 검증’을 시범사업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평가 방법 결정에 도지사의 재량권을 부여하며, 계량적 평가를 강조하고 있어, 이 조례를 활용하는 것이 RCT 도입의 현실적인 경로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경기도 시범사업 운영 및 평가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여, 특정 시범사업의 효과성 평가를 목적으로 RCT(무작위 배정 포함)를 허용되는 평가 방법론 중 하나로 명시적으로 규정할 것을 제언한다. 이 개정 조례안에는 RCT 수행의 법적 근거, 적용 범위, 대상자 적격성 심사 후 무작위 배정 원칙, 공정하고 투명한 배정 절차, 참여자 사전 고지 및 동의 확보, 독립적인 윤리 검토위원회의 심의 및 모니터링 절차, 개인정보보호법 준수를 포함한 엄격한 데이터 관리 규정, 평가 결과의 예산 편성 및 정책 개선 연계 메커니즘 등 본 연구에서 제시한 핵심 요건들을 구체적으로 담아 법적 안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RCT 도입 시 예상되는 도전 과제, 즉 헌법상 평등 원칙 침해 논란에 대해서는 ‘평가 목적’ 달성을 위한 공익성 및 절차적 공정성(모든 적격자에게 동등한 기회 부여)을 강조하고, 적용 대상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며, 통제집단에 대한 대안적 지원 연계 등 보완 조치를 고려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행정적 부담에 대해서는 담당 공무원 역량 강화, 외부 전문 기관과의 협력, 별도 예산 확보, 데이터 관리 시스템 구축 등을 제안하였고, 참여 기업 확보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투명한 소통, 행정 부담 최소화, 데이터 보안 강화, 참여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이러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과 실행 과정에서의 노력을 통해, 경기도는 증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선도하고, 한정된 재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지역 경제 발전과 도민 후생 증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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